내가 처음 그 여자를 발견한 것은 그녀의 새치기 때문이었습니다.
뒤늦게 와서 내 앞을 뚫고 먼저 버스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버스 속에서 그 여자를 다시 주목한 것은 그녀의 옷차림 때문이었습니다. 입석버스에서 제일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그녀의 거동을 관찰하게 된 까닭은 그녀의 집요한 좌석사냥 때문이었습니다. 너댓 명이 이미 손잡이에 매달려있는 버스에는 구태여 휘둘러보지 않아도 비어 있는 자리가 남아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집요하게도 앉을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녀가 승차하고  난 뒤 다음 정거장쯤이던가 그녀가 서 있던 곳에서 상당히 먼 앞쪽에 자리가 났습니다. 매우 빠른 동작이었지만 실패하였습니다. 다시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고 나서 드디어 자리를 잡았습니다. 내게는 물론 그녀의 성공을 축하할 마음이 없었지만 그제서야 나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핸드백을 무릎위에 올려놓은 다음 이제 여유 있게 차창 밖을 내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복한 표정도 잠시뿐 마치 바늘을 깔고 앉은 듯 질겁하는 얼굴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내릴 채비였습니다.  그녀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그만 지나치고 말았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린 사람은 아마 그 버스 속에서는 나 한 사람뿐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본의(?) 아니게도 그녀를 승차 때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본의 아니게도 그녀가 두고 떠난 좌석에 앉았습니다.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8차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굽 높은 구두로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짧았던 그녀의 행복을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빨리 뒤바뀐 그녀의 성공과 실패를 생각했습니다.

나무야 나무야 - 신영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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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때 내리진 못한 정류장이야 다시 길 건너 가서 되돌아 가는 버스를 집어 타면 되지만
살아가면서 쓸데 없는 것에 대한 욕심으로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