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호수에 앉아

조영민

슬픔을 깁는다 피가 스민다 한 땀 한 땀 깁다 보니 길이 보인다 잘 말려둔 분꽃향을 한 뼘 한 뼘 덧대고 저녁의 숨소리도 단단히 덧댄다 슬픔이 수면을 치며 날아간다
호수는 울렁울렁 제 몸에 슬픔을 가두고 머리맡에 달 하나를 띄워두고 나는 달을 접고 또 접어 물갈피에 감춘다 술렁술렁, 귀 같은 파문이 일렁거린다 수많은 귀들이 태어난다 바람에 귀들이 젖는다 나뭇잎 하나가 커다란 귓구멍으로 들어가고 있다 퍼즐처럼 떨어진 이파리들이 검은 물 밑에 가라앉고 있다


『시와시학』(2008.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