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06
그날 따라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히뿌연 하늘이 온통 하얀 눈에 덮여 세상은 온통 얼어붙은 듯 싶었다.
K시. S예식장.12시.
우리는 하객도 없이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딴 따안따 딴! 딴 따안따 딴-"
웨딩마치에 맞추어 나는 신부의 손을 잡고 주례 앞으로 나갔다.
텅 빈 예식장. 우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식을 올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주례가 시키는 대로 조그마한 반지 하나씩을 예물로 교환하고 식을 맞추었다.
이제 신랑 신부의 기념 촬영.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결혼식. 가장 기쁘게 웃는다는 결혼식 날. 신부는 한없이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모처럼 예쁘게 단장한 신부화장이 얼룩져 사진이고 뭐고 엉망이 되었다.
결혼사진. 한 장 둘이서 달랑 찍고 결혼식은 끝났다.
미안했다. 신부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무리 신부 댁에서 반대하는 결혼이라 할지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스물 세 살. 꽃다운 나이에 평생에 한 번 뿐인 결혼식을 그토록 서럽게 치뤘으니…….
생각하면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었다. 불치의 병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8년이란 긴 세월을 병마와 싸우노라 가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직장을 잃고 사랑하던 사람들마저 발길을 돌렸다. 아무도 눈 여겨 주지 않는 목숨 하나. 버림받은 저주스러운 목숨 하나. 기진맥진 절망뿐이었다. 살아 날 가망이라고는 겨자씨만큼도 없던 목숨.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쉴 새없이 쏟아지는 피. 피.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다. 그런 인생이 어쩌다가 피를 토하듯 생명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울분을 글로 썼다.
"묘한 세상"
사는 게 묘했다. 차라리 죽었으면 싶은 삶이었다. 그런데 가끔은 기적이 일어나는 법인가.
그 울분의 글 한 편. 1000자 수필에 감동한 아가씨가 있었으니……. 충청도 예산이 고향이라는 스물 세 살의 앳띈 아가씨.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던 그녀는 바로 천사였다. 내겐 구세주였다.
몇 년 동안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우리들의 이 가엾은 사랑에 감동한 수필가 P선생님! 어느 날 우리를 덕수궁으로 불러 "위대한 갯스비" 영화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뭐라 할까? 순종. 헌신을 얘기했을까?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절망의 늪을 지나 우리는 외롭고 긴 긴 순간들을 사랑의 편지로 다독였다.
그러던 어느 날.
1977년 7월 7일 오후 7시. 행운의 숫자 7자가 유난히도 많던 그 날 그 시각. 그녀는 내게 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그렇게 식도 올리지 않고 살던 우리는 그 해가 다 가던 12월 28일. 눈물의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그로부터 24년 후. 12월 28일. 오늘도 그 날처럼 하늘은 희뿌옇고 눈이라도 내릴 모양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날의 내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나. 절망뿐이던 나는 이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니던가.
정녕 한 여자 때문이다. 어려운 선택을 하고 24년을 오로지 홀시어머니와 병든 남편을 위해 헌신해 온 천사 때문이다.
"제 일생에서 가장 실수를 한 게 결혼이었어요. 하지만 내가 선택한 삶. 후회는 하지 않아요."
가끔은 투정을 부리는 사랑스러운 여자. 오늘은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할까? 그 안쓰러운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줄까? 선물 하나 마련하지도 못한 채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ㅡ 장생주 ㅡ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