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시(序詩)

        Rainer Maria Rilke


        
네가 누구라도

저녁이면

네 눈에 익은 것들로 들어찬 방에서 나와보라

먼 곳을 배경으로 너의 집은 마지막 집인 듯 고즈넉하다

네가 누구라도

지칠대로 지쳐 닳고닳은 문지방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너의 두 눈으로

아주 천천히 너는 한 그루 검은 나무를 일으켜

하늘에다 세운다

쭉 뻗은 고독한 모습

그리하여

너는 세계 하나를 만들었으니

그 세계는 크고

침묵 속에서도 익어가는 한 마디 말과 같다

그리고 네 의지가 그 세계의 뜻을 파악하면

너의 두 눈은 그 세계를 살며시 풀어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