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졸업 뒤 23살에 중매로 착해 보이는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시아버지는 자상하고 따스한 분이셨고 시어머니도 제게 잘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결혼 전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결혼 9년째인데 술, 도박 그리고 여자. 게다가 제가 돈을 벌면 그것을 믿는 것인지 자꾸 빚만 졌습니다.

그래도 가족이기에 남편에게 지금까지의 생활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봐서 다시 한번 시작하자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난 힘든 일은 못해, 하기 싫어. 그리고 지금의 이 여자가 더 좋고 편해”라고 하더군요. 결국 이혼을 했습니다.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가게를 내고 1년쯤 뒤에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다리를 펴고 누울 수 없이 작고 전기장판이 깔린 방에서 부탄가스로 밥을 해먹으며 살려니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소풍 온 거 같지?”라고 재미있게 얘기했지요. 6년 동안에 조금씩 벌 때마다 더 나은 가게로 옮기기를 5번.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어 틈틈이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두 아이 모두 엄마를 많이 이해해 주고 도와주는 친구 같이 자랐습니다. 이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저는 아마 인생을 포기하고 살았을 겁니다.

이번에 비록 내 집은 아니지만 예쁘고 넓은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가게도 22평의 멋진 호프 전문점입니다. 가정이라는 틀을 깨고 편안함을 찾아간 그 사람은 지금 어느 고시원에서 혼자서 생활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나 봅니다. 일년 전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저를 보고 싶다고 해서 아이들과 함께 찾아갔습니다. 두 분의 연로하신 모습에 가슴이 많이 아프더군요. 약값에 쓰시라고 약간의 돈을 봉투에 넣어 드렸습니다. 저를 볼 면목이 없다고 야윈 어깨로 들썩이며 우시는 어머님, 자식이지만 이해가 안 간다고 겉 낳지 속 낳는 것 아니라며 눈물을 보이시는 아버님.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뒤로 두 분 다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지금 세상에 안 계십니다.

이제 아이들 아빠도 미워하지 않으렵니다. 서로 인연이 아닌 사람이 만난 것뿐이니까요. 그리고 저에게 예쁘고 귀여운 자식을 준 사람이니까요.



심은희 님 / 경기도 성남시 금광1동
<월간 좋은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