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감염 사실 숨기고 2천여 명의 남성과 윤락행위 한 혐의로 구속된
구씨 남편의 믿기지 않는 순애보

“내가 에이즈로 죽는 한이 있어도 아내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숨기고 1년6개월 동안 2천여명의 남성을 상대로 윤락행위를 해오다 지난 6월6일 에이즈예방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구씨의 남편 박모씨. 그는 놀랍게도 아내가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고도 13개월을 함께 살았다고 한다. “아내로 인해 에이즈에 걸려 명(命)이 짧아진다 해도 죽을 때까지 아내와 함께 살겠다”는 박씨의 순애보.

에이즈에 감염된 구모씨(여·28)가 전남 여수와 경기도 화성 등지를 돌며 하루에 4∼5명씩 1년6개월 동안 2천여명의 남성을 상대로 윤락행위를 해온 사실이 지난 6월6일 드러나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6월16일 구씨의 남편 박모씨(41)가 살고 있는 경남 김해시 진례면을 찾았다. 야트막한 산밑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농촌마을 입구에는 당산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에게 박씨의 집을 묻자 “마을 중간쯤에 있는 제실(帝室) 뒷집이다”며 “아침에 모내기를 한다고 나가서 집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씨의 집 대문은 닫혀 있었다.

잠시 후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박씨의 아버지(66)를 만났다. “모내기를 하다가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가지러 왔다”는 그는 “단칸방인 이 집에서 아들과 함께 단둘이 살다가 며느리가 들어오면서 나는 다른 집으로 가서 살았다. 며느리와 관련된 사건 때문에 아들을 만나러 왔냐”고 물었다. 헛간에는 비료가 쌓여 있었고 마당 한쪽의 빨래건조대에는 박씨의 것으로 보이는 옷가지가 널려 있었다.

그는 “며느리가 ‘걸려서는 안될 몹쓸 병에 걸려서 경찰이 잡아갔다’는 이야기를 아들로부터 전해들었다”며 아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는 논으로 안내했다. 밀짚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친구 부부와 함께 모내기를 하고 있는 박씨에게 다가가 필자의 신분을 밝히자 그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며 애써 외면하려 했다. 묵묵히 모판을 옮기던 그가 한참 후 논두렁으로 나와 풀섶에 앉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 후 그는 “도대체 세상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게 뭐냐”고 되물었다. 음료수 두잔을 연거푸 들이킨 그는 “그래요, 이참에 다 얘기를 하지요”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내가 에이즈라는 것 알고도 함께 살아

“아내와 함께 살던 중에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에이즈, 그래요. 아내가 세상 사람들이 벌벌 떠는 에이즈라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난 후에도 13개월을 한 이불을 덮고 살았어요. 아내와 함께 보건소에서 정기적으로 에이즈 검사도 받았고요. 전 많이 배우지 못했어요. 그래도 에이즈가 어떤 병이라는 정도는 알아요. 죽는다는 것도 알고 있죠. 그래도 같이 살았어요.”

170cm 정도의 키에 마른 얼굴의 박씨가 아내 구씨를 처음 만난 것은 98년 5월. 부산에 살고 있는 후배로부터 구씨를 소개받았지만 그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당시 박씨는 서른일곱, 구씨는 스물넷이었다.

“소개받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후배가 그 여자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왔더라고요. 그날(후배가 데리고 오던 날)부터 같이 살았어요. 아내가 맘에 들었지만 가진 것도 없는 가난한 농촌 총각한테 시집올 것 같지가 않아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결혼식을 올릴 형편이 안돼 혼인신고만 하고 살기로 했죠.”

같이 산 지 한달이 지나자 아내 구씨는 박씨에게 “할말이 있다”고 했다. 결혼을 한 전력이 있고 전남편에게 여섯살 난 딸이 있다는 것.

“아내가 지난 과거에 대해 털어놓으려고 할 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말렸어요. 그냥 예전에 사귀던 남자가 있었다는 정도일 것이라고 짐작했어요. 세상에 과거 없는 여자가 어디 있겠어요. 아이까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아내는 ‘딸을 데리고 와서 같이 살고 싶다’며 울더라고요.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알고보니 중학교 때부터 알게 된 남자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고 어쩔 수 없이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열여덟살에 임신해서 열아홉에 딸을 낳았다고 해요.”

박씨에 따르면 구씨가 전남편과 딸을 두고 집을 나온 것은 그를 만나기 일년 전이었다고 한다. 한쪽 팔이 없는 구씨의 전남편은 생활능력이 없어 구씨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했다고.

“아내는 처음 소개받던 날 ‘부산에서 회사에 다녔다’고 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어요. 그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도 더 이상 묻지 않았어요. 그런 과거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과거 따위는 묻어두기로 했어요. 딸아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자고 동의했는데 전남편이 ‘아이를 주지 않겠다’고 해 포기했어요.”

아내 구씨가 에이즈 감염 판정을 받은 것은 98년 3월. 박씨를 만나기 두달 전의 일이었다. 경북 영주의 한 다방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영주보건소에서 에이즈 양성판정을 받고 보건당국의 관리대상이 되었다. 룸살롱 등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접대부는 1개월에 한번씩 보건소에서 성병검사를, 6개월마다 에이즈 검사를 받아야 하고 다방 등지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6개월에 한번씩 성병검사와 에이즈 검사를 동시에 받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구씨는 에이즈 보균자로 판명되었지만 그 사실을 통보받기 전에 영주를 떠났고, 같은 해 4월 부산의 친정 집으로 전입신고를 했다. 그가 부산으로 전입함에 따라 관리를 맡게 된 부산 북구보건소는 구씨를 찾아 나섰지만 가족과도 연락이 끊겨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영주에서 부산으로 오자마자 저를 만난 것 같아요. 1년4개월 동안 동거하다가 99년 9월에 혼인신고를 했어요. 그런데 며칠 뒤에 김해보건소의 직원이 집으로 찾아왔더라고요. 혼인신고와 함께 부산에서 김해로 전입신고를 한 것을 알고 김해보건소에서 ‘아내가 실종된 에이즈 감염 환자’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어요. 아내도 그날 처음 알았어요.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아내 구씨는 “보건소의 판정을 믿을 수 없다”며 재검사를 요구했다. 보건소측은 구씨의 의견을 받아들여 재검사를 실시했다. 박씨도 함께 검사를 받았다. 99년 10월 구씨의 재검사 결과는 처음과 동일하게 에이즈 양성반응이 나왔고 박씨는 음성반응이 나왔다.

“에이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내와 함께 한참을 울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두렵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어요. 1년 넘게 살면서 아내가 저에게 참 잘해줬어요. 결혼해서 처음으로 사람답게 살아봤죠. 행복이란 게 뭔지도 알게 됐고요. 가진 것은 없었지만 아내가 있어 즐거웠어요. 돈도 없고 못 배운 농촌 총각에게 시집와 살겠다는 여자도 없어 결혼은 포기하고 살았거든요. 그런데 아내는 달랐어요. 나를 사랑하고 감싸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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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에이즈에 걸린 줄 알았다면 같이 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어요. 하지만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버릴 수는 없었어요. 제가 감염되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같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사는 날까지 같이 살자고 약속을 했어요. 그 이후론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예전처럼 지냈어요. 아내도 고통을 잘 참고 견뎌냈고요. 보건소에서 성관계를 할 때는 꼭 콘돔을 사용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어요.”

아내가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고도 같이 살겠다는 남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믿기지 않는 말을 털어놓은 그에게 “당신이 에이즈에 걸려 죽을 수도 있는데, 생명을 담보로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었느냐”고 조심스럽게 되묻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버럭 화를 내며 필자에게 “결혼했냐”고 물었다. “결혼했다”고 하자 “만약 당신 남편이 죽을 병에 걸렸다면 남편을 버릴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고 하자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요즘에는 별일 아닌 일로 부부가 이혼을 한다고 합디다. 특히 저보다 많이 배우고 돈 있는 사람들은 이혼도 쉽게 하고 그런다면서요.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그 여자는 엄연히 제 아내고 저는 그 사람의 남편입니다. 결혼해서 살다보니 ‘아내가 몹쓸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됐고, 그게 전염병이라 저에게도 옮을 가능성이 있어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렇다고 제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전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 그 사람 때문에 제가 일찍 죽는다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내를 버릴 수 없어요.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을 겁니다.”

“아내는 나를 유일하게 사람대접한 사람”

그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사람 사는 거, 이리 살아도 한평생이고 저리 살아도 한평생인데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다가 설령 제 명(命)보다 빨리 죽는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냐”며 말끝을 흐렸다.

박씨의 믿기지 않는 순애보에는 그가 살아온 ‘서러운’ 삶이 묻어 있었다. 박씨가 살고 있는 마을은 광주 안씨 집성촌. 겉으로 표나지는 않지만 아직도 ‘양반’과 ‘상놈’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그는 “나이 적은 ‘양반’이 나이 많은 ‘상놈’에게 높임말을 쓰지 않는 게 이 마을에서는 아직까지 불문율처럼 지켜지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곳에서 박씨와 그의 아버지는 상놈 취급을 받으며 안씨 문중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한평생 살았다는 것. 그는 “광주 안씨의 제실 관리를 맡아주는 조건으로 문중 소유의 집에서 살고 있다”고 밝히며 “이렇게 대접받지 못하고 산 저를 아내는 사람대접을 해줬다”며 눈물을 참으려는 듯 먼 산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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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씨는 김해보건소와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구룡포에서의 10개월 동안의 행적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김해보건소측에 따르면 “구씨는 남편과 살면서 구룡포에서 간간이 접대부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남편에게 알려지는 게 미안해서 그런지 ‘구룡포 생활’은 자세히 밝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에 박씨는 “종종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며 며칠씩 아내가 집을 비웠지만 구룡포의 다방 등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아내는 ‘고맙고도 미안하다’며 눈물만 흘려

“며칠씩 집을 비우는 일 외에는 별탈 없이 잘 지내던 아내가 2000년 10월에 말없이 집을 나갔어요. 집을 나가기 몇달 전부터 신용카드 대금청구서가 날아왔는데 그것 때문에 무척 고민을 하더라고요. 살면서 생활비라고 목돈을 준 적도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 먹고사는 정도였는데 돈이 궁했던 아내가 카드를 사용했던 모양입니다. 카드를 어떻게 발급받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뒤에 알아보니 4백여만원의 카드대금이 연체되었더라고요. 갚을 길이 없어 막막했죠.”

박씨는 아내가 집을 나간 다음날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그가 있을 만한 곳은 다 찾아다녔다. 그러기를 5개월여.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지난해 초 경찰에 가출 신고를 했다.

“경찰의 힘을 빌려서라도 아내를 찾고 싶었어요. 카드빚 갚을 돈을 마련해주지 못했던 게 내내 마음에 걸렸거든요. 저 같은 놈에게 4백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었어요. 아내만 찾으면 무슨 일을 해서든 카드빚을 마련하겠노라고 다짐하고 아내를 찾아다녔는데 1년이 넘도록 아내 소식을 알 수 없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다녔고 기다렸죠. 남들은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아내는 착한 여자였어요.”

박씨는 아내의 씀씀이가 농촌에서 살기에는 좀 헤프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박씨 아버지는 “며느리가 집을 나간 후 아들이 거의 밥을 입에 대지 않았다. 전보다 살이 20kg 정도 빠졌다”고 말하며 안쓰러운 눈으로 아들을 쳐다봤다.

에이즈에 감염된 구씨가 전남 여수역 일대 윤락가에서 2000년 10월부터 1년 반 동안 2천여명의 남자들과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것은 지난 6월6일 그가 구속되면서부터. 에이즈환자는 특수전염병 관리대상자로 지정돼 주거가 바뀔 경우 신고를 하게 돼 있으나 구씨는 신고 없이 옮겨 ‘몰래’ 윤락행위를 해왔다.

행방불명되었던 그가 5월18일 경기도 화성시 보건소에서 보건증을 발급받는 과정에서 ‘사라진’ 에이즈 환자임이 확인되자 화성보건소는 즉시 그의 관리를 맡고 있던 김해보건소에 연락을 취했다. 5월21일 화성에서 구씨를 데리고 온 김해보건소 관계자는 그간의 행적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구씨가 “여수와 화성 등지에서 하루에 4∼5명에서 많게는 10여명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고 남성의 절반 이상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자 보건복지부와 협의에 들어갔다. 보건복지부는 “경찰에 고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김해보건소는 6월5일 김해경찰서에 고발장을 접수했고, 구씨는 다음날 구속됐다.

“에이즈 감염자를 격리 수용하라는 규정이 없어 김해보건소측은 조사를 마친 아내를 5월말께 친정집에 데려다줬다고 해요. 아내가 ‘남편과 살고 싶다’고 했다며 장모와 처남이 6월초에 아내를 데리고 왔어요. 20개월여 만에 다시 아내를 만난 겁니다. 그때도 그동안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지냈냐고 묻지 않았어요. 아내는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해달라고 하대요. 이틀 밤을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로 지새웠어요. 다음날 아내가 ‘잠시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며 집을 나갔는데 ‘경찰에 있다’는 연락을 받은 겁니다.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고도 일(접대부)을 했다는 게 (법에) 걸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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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주민들 사이에서는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누가 에이즈에 걸려 죽었다”느니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이 수백명이 넘는다”는 등 풍문까지 떠돌아 민심이 흉흉한 상태다. 구씨가 한때 일한 것으로 밝혀진 구룡포도 마찬가지다.

“마산교도소에 있는 아내에게 지난 10일 면회를 갔어요. 아내는 저를 보자마자 ‘미안하다. 할말이 없다’고 하면서 막 울더라고요. ‘카드빚을 갚기 위해 그랬다’며 ‘카드빚은 거의 다 갚았다’고 하대요. 경찰조사 과정에서 아내와 얼굴은 마주쳤지만 무슨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교도소로 면회를 가서야 그동안 하지 못한 얘기를 주고받았죠. 아내가 돈이 없어서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제 책임도 크죠. 그게 더 마음이 아파요. 제가 능력 있고 돈 잘 버는 남편이었다면 아내는 더 이상 그런 일(접대부)을 하지 않았을 테고…. 아내와 저는 더없이 행복하게 살았을 겁니다.”

그는 면회실을 나오며 아내에게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난 당신을 언제까지나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에이즈에 걸려 죽는 한이 있어도 당신과 같이 살 테니 몸조심하라”고 당부하자 아내 구씨는 눈물을 흘리며 “당뇨병 치료를 잘 받으라”고 하면서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건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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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바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해도 아내의 에이즈마저도 사랑하면서 살겠다”고 강조하는 박씨는 “아내가 임신했을 때 무척 기뻤지만 임신 직후, 아내가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돼 아이까지 포기하며 둘이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했다. 아내가 교도소에서 나오면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죽음을 무릅쓴 사랑’. 검게 그을린 ‘순박한’ 박씨의 얼굴에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그 무엇인가가’ 짙게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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