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들에게 만원이 생기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물었는데, 가장 많은 대답이 '자장면 한 그릇 먹고 싶다.'였답니다.
얼마 전 아침조회시간에 부장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깁니다. 꼭 자장면이 아니라 음식, 말하자면 절실한 배고픔을 표현한 것 아니겠어요? 너무나 안타까운 얘기였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수원에서 어느 지하도를 지나가다 저는 머리가 희끗한 남자 한분이 구석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노숙을 하는 것 같긴 했는데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값싸 보이지는 않지만 때가 좀 탄 양복을 단정히 입고 금테 안경을 쓰고 지하도 계단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앚아 겠셨습니다. 옆에는 흔한 여행용 가방과 과자 부스러기가 뒹굴고 있었구요.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왠지 안쓰러운 생각이 들더군요. 주머니를 뒤져 보니 2만원 정도가 있었습니다.
그 돈을 없었던 셈치고 그 아저씨께 드리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돈이 너무 적은 것 같기도 하고 아저씨가 기분 나빠하실 것도 같아 좀 망설여졌습니다. 그 때 며칠 전에 들은 자장면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어떻게 얘길 할까 하다가 거짓말을 했지요.
"아저씨, 저 지금 심부름하러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점심을 못 먹었어요. 배는 고픈데 낯선 곳이기도 하고, 혼자 밥 먹기가 싫으네요. 혹시 식사 안 하셨으면 저랑 같이 가 주시지 않을래요? 제가 살게요."
그러자 아저씨는 날 쓱 쳐다보더니, "괜찮겠어요?"하고 살짝 웃으시더군요.
예상 외의 반응에 마음이 놓인 저는 아저씨와 중국집에 마주앉아 자장면을 시켰습니다. 우리는 조금씩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 아저씨는 얼마 전까지 잘 나가는 중소기업의 간부로 계시다 그 뒤 구조조정으로 지금에 이르렀다며 더 이상은 말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해서도 물으셨습니다. 자신의 아들과 같은 또래라며 기특해 하셨지요. 그리고는 무엇을 하든지 열심히 하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뭔가 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라면서....
아저씨가 자장면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중국집을 나와서는 "아저씨,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했답니다. 아저씨는 쑥스러워 하시며 "내가 고맙지!" 하며 아까보다 더 활짝 웃으셨습니다.
헤어지기 전 왠지 남 같지 않고 자꾸 마음이 쓰였지요.
"아저씨, 빨리 집으로 돌아가세요. 가족들이 걱정하고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
아저씨는 말없이 웃으시며 고개만 끄덕이셨습니다.
정류장에서 헤어진 후에도 마음에 걸려 뒤를 돌아보았더니, 아저씨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지하철 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마음이 놓였습니다. 아저씨가 말씀하신 제 또래의 아들에게 돌아가고 계시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